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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배

[홍은학당] 신학적 신론 신정훈미카엘 신부

신학적 신론: 하느님은 누구이신가?
구세군에서 운영하는 복지관과 청진사, 홍성교회, 은제교회 중에서 왜 이곳 성당에 오셨는가? 고3학생을 위한 기도, 자기 아들이 서울대 가면 하느님은 기도를 잘 들어주시는 분이고, 서울대 못 가면 하느님은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하느님은 청하면 주신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주시지 않는다. 서울대학교, 아파트 하나, 남편의 좋은 직장에 머문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주시는 것은 미끼다. 하느님께서 거저 주셨다는 것을 다 안다. 은총의 미끼다. 두 가지 은총의 미끼가 있다.
은총으로 주어진 선물에 머물지 말고 하느님을 달라고 청해야 한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 구원, 천당에 가야하는 것 아닌가!
예: 임금과 무슬이(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임금과 중전은 부부,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로 동등하기에 감사할 일도 임금이 베풀 일도 없다.
자판기 신앙(200원짜리 신학교 커피), 하느님을 써 먹는 현대인의 신앙이 문제다. 중세 안셀모성인은 하느님은 우리 생각을 뛰어넘는 하느님이시다. 그런데 우리가 하느님이 되고 하느님은 종이 되신다. 이렇게 기도하면 죽음에 이른다. 왜냐하면 십계명에 나와 있다. "한분이신 하느님을 섬겨라."하고 말하는데 그 하느님 자리를 우리가 차지하기 때문이다. 종교신학자는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모든 것에 매이게 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하느님 한 분에게 매이는 것이 더 낫다. 창세기 15장, 장수를 청한다. 당연히 건강, 장수, 자손의 번영을 청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고통을 주실 때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준다. 하느님을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로 가는 것이다. 임금과 잠을 잔 무슬이는 궁녀의 신분에서 벗어난다. 새신분, 새집, 새옷에만 황홀해 있는 어리석음을 범할 것인가! 왕이 되서 모든 것을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구약의 하느님, 계약의 불충으로 바빌론 유배(70년) 생활을 하게 된다. 아, 홍은동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우주의 하느님, 창조주로서의 하느님(창조신학)이심을 깨닫게 된다. 좋을 때만이 아니라 고통속에서도 하느님은 계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마카베오서, 아자리야(돼지고기를 안 먹는 이유), 쇠고기도 사양하고 일곱형제가 죽는다.
하느님을 믿고 섬겼는데 죽었다. 세상에서 복을 받지 못한 이에게 상을 주시기 위해 부활 사상이 나타난다. 이런 사상의 배경 안에 예수님이 오신다. 이 세상에서 받는 복은 하느님 나라에서 받는 복의 맛보기일 뿐이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성자, 성부, 성령이 같은 분인가? 같은 분이시라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인가?라는 골치 아픈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삼위일체교리가 나오기까지 700년이나 걸렸다. 하느님께서 인성(육화하신 하느님)과 신성(창조주 하느님: 신, 피조물과 절대 같지 않다)을 가지셨다는 교리가 매우 중요하다.
진도의 팽목항에 내려가 위로한다. 우리 처지를 위해 이해해 주시고 여기까지 와 주셔서 감사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여기까지이지만 '예수님은 바닷물속에 빠져 죽는 아이들처럼 더 살아야하는데, 여기서 죽으면 안 되는데,' 라는 상황까지 받아들이시고 십자가 위에 죽으셨다. 이순이 누갈따의 오빠는 샌님이었는데, 포졸에게 잡혀가 고문 당해 무릎이 까져 뼈가 보이자, "예수님은 얼마나 아프셨을까?"라고 생각하고 글로 적어놓았다.
결혼하셨어요? 부부는 한마음, 한몸이 되어야 한다. 발가락이 닮았네라는 소설처럼 남의 자식인데 발가락만 닮아도 좋은데, 전혀 다른 남남인데 한맘 한몸이 되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하느님께 청하고 예수님을 따라 사는, 성자를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느님, 예수님,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성령을 이야기하자. 성령을 받으셨는가? 꽃동네 이야기, 오색으로 변할까봐, 안수할 때 뒤로 넘어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러지 않아 새신부때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연희동 보좌로 왔을 때 성령기도에 갔더니 안수도 안했는데 쓰러지더라. 12시 철야기도, 12시에 못 자는 사람들이 주로 오신다. 성령을 통해 위로를 받고자 하는 이들이 오신다. 성령은 바람이다. 잡을 수 없다. 어디서 불어오고 불어가는지 모른다.
치유의 은사를 받는 분의 예, 자기 부인이 암에 걸려 쓰러져 12시간 기도했는데도 하느님께서 데려가시더라. 성령을 자신을 위해 쓸 때 오염되고 망한다. 성령은 공동체를 위해서, 공동선을 위한 것이다. 사목회장, 구역장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직무에 맞는 은총을 주신 것이다. 성령은 하느님께로, 예수님께로 이끄시는 분이다.
성프란치스코 방한 때 봉헌한 다문화 가족(남편은 다리 절고 하얀 옷을 입고 쭉 빠진 몸매의 베트남부인과 다섯 살짜리 아이)이 했는데 그것만 보아도 하느님께서 그들을 소중히 여기심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부인의 리모델링 이야기, 저희 오빠가 아프거든요, 리모델링하다가 오빠가 깰깨봐 남편과 싸우지 못하고 두 달 동안 내집이 아닌 것 같았다.
천당에 가면 시어머니와 함께 사실 수 있나? 하느님을 닮은 분들이 가는 곳이다.
살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연옥이 있다. 성화, 하느님을 닮아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