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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

[강론] 오직 사랑만이



연중 제11주일 오직 사랑만이
(전숭규 신부)

부끄러운 초등학교 시절의 일을 고백합니다. 어린 나이에 먹고 싶은 것도 많았으나 늘 용돈이 부족했습니다. 궁리 끝에 아버지의 지갑을 털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밤, 아버지가 잠이 드신 틈을 타서 바지 뒷주머니를 보니 지갑이 있었습니다. 지갑을 열어 보니 지폐가 여러 장 들어 있었습니다. 한두 장을 꺼내도 표가 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훔친 돈으로 가게에 가서 마음껏 과자를 사먹었습니다. 친구들에게도 선심을 썼습니다. 그래도 돈이 남아서 학교에 가지고 가서 저축을 했습니다. 내용도 모르시는 담임선생님은 기특하다며 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친구들에게는 인심을 얻고 선생님에게는 칭찬도 받고,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격이었습니다.

저의 도둑질은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모르시는 듯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저에게 할 말이 있으니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순간 “이젠 들통이 났구나”하는 생각에 눈앞이 아찔했습니다. 아버지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 돈을 어떻게 했느냐”로 물으셨습니다. 저는 사실대로 다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통장을 가져오라고 하시며 확인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것이 야단의 전부였습니다. 며칠 뒤에 동네 어른들이 저희 집에 오셨는데, 아버지는 저를 부르시더니 저금통장을 가져 오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그 통장을 어른들에게 보여 주시며, “우리 막내가 용돈을 아껴서 이만큼이나 저금을 했다오”하시며 자랑하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을 두 번씩이나 확인하였습니다. 그 후 저는 더 이상 도둑질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시딤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아버지는 아들의 못된 버릇을 고칠 수가 없어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을 랍비에게 데려가 아들의 버릇을 고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랍비는 아들을 건네받아 하루 동안 따뜻한 품에 안고 지냈습니다. 다음날 아버지가 랍비를 찾아갔을 때 아들은 마술에 걸린 듯 얌전해졌습니다. 도덕적인 설교가 아니라 사랑이 그 아이를 치유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죄 많은 여인을 사랑으로 품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그릇된 과거 삶을 청산하고 새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그 여인을 치유한 것입니다. 저 또한 부족하고 흠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런 못난이를 하느님은 용서해 주셨고, 더욱이 사제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교회 공동체는 이런 저를 받아 들여 봉사의 직분을 맡겨 주었습니다. 이처럼 많이 용서받고 사랑받았으니 이제 저에게 남은 일은 더 많이 사랑하며 사는 일입니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