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선장의 하루

[글] 떠나야 하는 길에서 느끼는 두려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드디어 2월 4일 오후 3시에 염수정 안드레아 주교님을 모시고 국립경찰병원 가톨릭 원목실및 성 라파엘 성당 축성식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준비 때문에 전화를 했는지 알고 일반병원사목부 담당 신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축성식에 관한 문제로 전화 한 것이 아니라 2월 5일 서울 대교구 본당 사제 인사 발령 때 나를 가톨릭 중앙 의료원 원목신부로 발령을 낸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원목실장에서 부실장으로, 더군다나 경찰병원에 후임 신부는 오지 않고 보훈 병원을 담당하고 있는 신부님이 겸임한다는 소식이었다. 서울 의료원도 이제 전임 신부님과의 불협화음을 조금씩 걷어내고 새로운 교우회 성심회 총무를 선출하여 서서히 분위기를 잡아가고 있는데 인사발령이라니, 무엇보다도 성 라파엘 성당 공사가 끝나자 마자 난 그곳에서 며칠 지내지도 못하고 떠나야 한다는 것이 불합리한 인사라는 생각이 내 마음을 사로 잡아 버렸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하는지?

나중에 따로 조용한 곳에서 통화를 했는데 염주교님이 여러 신부중에 저를 낙점했다며 자신도 힘든 상황이니 도와 달라는 말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염주교님과 면담 때에 말씀드리기로 하고 일단 통화를 끝냈다.
아브라함도 나이들어서 정든 고향을 떠나라는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며 길을 떠났는데 사제가 된지 13년이 지난 나에게 낯선 곳을 향해 길을 떠나라는 소식에 순명하기가 이리도 힘든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나는 헨리 나웬 신부님을 무척 좋아하고 그분의 삶을 동경해 왔다. 특히 하버드 대학의 교수로서
모든 명성을 뒤로 하고 장바니에가 만든 라르슈 공동체에 가서 정신 지체 부자유자들과 함께 한 그의 삶이
아름다웠다.
그곳에서 첫 미사를 할 때 자신이 그동안 강의해 왔던 모든 영성적 가르침이 그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자신이 처음으로 돌보게 된 '아담'이라는 친구를 통해 오히려 내 자신이 그를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항상
해 맑은 웃음으로 자신의 도움을 받았던 그가 나에게는 예수님을 만나게 해 준 고마운 사람이라는 그의 생각과
주장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러던 나에게 닥친 인사발령은 큰 시련이자 내 자신의 현재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아름다운 도전이었다.
내가 3년 2개월 동안 국립경찰병원에서 소임을 맡고 있을 때 성전 축성식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 보다 적어도 9월, 11월 인사발령을 통해 옮길 줄 알았던 나의 생각이
역시 하느님의 섭리를 거스른다는 것이었다.

자, 이제 정든 모든 이들과 모든 것들과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나에게 언제나 힘이 되어 주었던 많은 젊은이들의 순수한 모습과 병고 속에서도 웃음을 지었던
그들의 아름다움이 가슴으로 전해진다.

사랑하는 주님 가족 여러분!
저는 그대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참 행복했습니다.
그대들도 성라파엘 성당을 통해서 사랑의 주님을 만나 언제나
행복하길 기도합니다.

길벗 고수 외침.
사용자 삽입 이미지